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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1신>__새로운 시작으로...
※ 인도의 '두번째여행기'와 '세번째여행기'는
제 지도카페(cafe.daum.net/hiseoulphoto)에 먼저 올렸던 내용을
종전의 제 개인홈피를 리뉴얼하면서 이번에 일괄해서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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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1신>__새로운 시작으로...
19일(토) 전시회 마무리 겸 총회를 끝으로 서울에서의 다난했던 한해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요일에 짐을 꾸려 어제(월) 오후 1시 혼자서 인디아항공에 몸을 실었지요.
국적기는 너무 비싸 할인항공을 이용했기 때문에 홍콩을 경유하느라 10시간 이상을 비행끝에 한국시간으로 새벽 1시,
인도시간으로 밤 9시 반에 델리공항에 도착해서 지난 8월에 머물렀던 관사에 무사히 여장을 풀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픽업하러 공항에 나온 운전기사 무케시랑 주방아줌마 안제니가 다시 만나 무척 반가운가 봅니다
낼은 아침 일찍 국내항공으로 바라나시에 갑니다 인도에서 가장 인도다운 곳이지요
짐 정리좀 하고 인터넷 연결해보니 반가운 소식이 들어와 있네요
연말 안에 계획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 돼서 정말 기쁩니다
시작한지 딱 6개월, 이 짧은 기간에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해냈고 장족의 발전도 이뤘습니다
그 성과가 오늘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송년을 맞을수 있는 큰 선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앞장서 헌신하신 운영진이나 열심히 뛰어서 우리까페를 수준 높게 살찌운 회원분들 모두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호회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건 아닙니다
수많은 인고의 세월과 번민의 긴 터널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점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에 빠진 사람은 절대로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더 큰 발전도 있는 법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새해엔 더욱 크고 화려한 무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큰 꿈을 가지고 희망에 부푼 새해를 맞읍시다
2010. 12. 21, 인도에서
인도 델리공항에서...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2신>__바라나시에서 바라는것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2신>__바라나시에서 바라는것
▷ 가장 인도스러운 곳, 바라나시
델리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 국내항공을 이용해 지난번 못들렀던 바라나시로 왔습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보니 웬만하면 다 항공편으로 이동해야 편합니다
옛날에 한번 델리에서 기차로 12시간을 무지무지 고생해서 온 적이 있지요.
지금 생각하면 마치 내가 꿈속을 헤매고 왔나 싶을 만큼--
제 전자책 인도편은 그 때의 첫 느낌을 담아 한 월간지에 게재한 내용을 옮겨놓은 겁니다.
“시간이 정지된 곳”같은 그때의 첫 느낌이 지금도 여전하네요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
컨베이어에서 짐을 찾으려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에도 문자 한통이 날아왔습니다.
“귀하는 여행제한지역 포함국가 여행중, 여행제한지역 체류여부 확인요망”
깜짝놀라 발신지를 보니까 외교부네요
난 첨 격는 일이라 어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주저하다 의례적으로 다 보내는가보다 하고
그냥 넘겼지요 그러자 잠시뒤 다시 “제한지역 체류시 긴급용무 아니면 출국 요망”
진짜 당황스럽게 만들데요.
불현듯 누군가 내 행적을 주시하고 있는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도 묘했지만,
또 한편으론 듣던거와는 달리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신경을 좀 써주는구나 싶어
조금은 안심도 되더군요
난 그냥 넘길일이 아닌가보다 싶어 이실직고(?)를 했지요.
“지금 막 도착, 27일 델리행”
공항을 빠져나와 일인가 했더니 정말 바라나시에서 얼마전 폭탄테러가 일어나
여행제한지역이 되었다고 하네요. 어쩐지 거리 곳곳에 무장경찰들이…
아직도 힌두교와 무슬림간의 갈등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조심해야겠군요.
히말라야의 물을 모은 '강가'가 유유히 평원을 가로질러 '시바신'의 이마에 걸린 초승달 모양의
구부러진 곳으로 흘러드는데 그곳에 바라나시가 있습니다
그동안 TV 특집으로도 많이 소개됐던 인도에서 가장 인도스러운 곳이라 할 수 있죠
이런말까지 있지요 “바라나시를 보지않았다면 인도를 본것이 아니다”
또, 미국의 대문호인 마크 트웨인도 “역사보다,전통보다,전설보다 더 오래된 도시”라고 언급할만큼 바라나시는 BC 600년경부터 당대의 신흥사상가나 철학자들이 몰려들어 지식과 사상을 나누던
도시였지요
때문에 부다가 되기 전의 '싯다르타'가 이곳 ‘사르나트’에 와 처음 깨달음을 설파했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거지요
이러한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요가수행자들은 물론이고, 특히 철학이나 ‘산스크리트어’등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젊은이들이 찾아와, 성스러운 강가(영어명 갠지스)강에서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해결하지요
※ 주 : ‘산스크리트어’ _불교경전의 원전은 이 문자로 쓰임.
우리의 팔만대장경은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한 번역본
비행기에서 내렸더니 대합실까지 걸어가라네요, 허참~
공항터미널입니다
밖에 나오니까 이렇게 살벌하네요
아무래도 예정보다 앞당겨 델리로 돌아가야 할것 같습니다
지도를 얻으려고 관광안내소에 들렸는데 문이 예뻐서 한컸...
호텔에 도착하면 젤 먼저 반겨주는 사람입니다
호텔입구에 있는 나무가 특이해서...
▷ 불교 4대 성지 ‘사르나트’의 전설
미리 예약된 호텔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바로 '사르나트'에 갔습니다
불교의 4대 성지중 하나인 '사르나트'는 부다가 처음 깨달음을 설파한곳으로 더 알려져있죠
하지만 이곳은 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이미 영겁의 세월 동안 천여명의 부처님들이
앞서 설법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부다 또한 당연히 이곳에서 설법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거죠
특히 이곳에는 아주 재미있는 설화가 있답니다
아마 들은분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까마득한 과거에 이곳 '사르나트' 숲속에는 한 무리의 사슴 떼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사슴떼의 왕이 바로 부다였지요
그런데 당시 바라나시의 마하라자왕은 사냥과 사슴고기를 매우 즐겨, 사슴들은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답니다
보다못한 사슴왕은 마하라자를 찾아가 사슴들이 순번을 정해서 매일 한마리씩 죽어줄테니
사냥을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고, 그날 이후로 사슴들은 한마리씩 죽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죽을차례가 된 사슴이 공교롭게도 새끼를 밴 사슴이었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사슴왕은 이 어미를 위해 자신이 죽기로 결정했지요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하라자는 자신의 자비심이 사슴만도 못하다는걸 깨닫고,
그 이후 사르나트에 있는 사슴을 잡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답니다
이 사르나트의 한자이름은 녹야원, 바로 '사슴정원'이란 뜻이죠.
사르나트의 상징탑인 '다멕 스투파'_석가 이전엔 불상대신 무엇을 상징으로 삼았을까요?
바로 이런모습의 탑이었답니다 지금의 종 모양이 이 탑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요?
상징탑 앞에는 항상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옵니다
사원 밖의 걸인들에게 자비를 배풀고 있는 스님
사르나트에서 가장 큰규모의 사원인 '몰라간다 꾸띠비하르'
'몰라간다 꾸띠비하르'안에 있는 스리랑카에서 기증했다는 금불상
금불상을 모신 사원건물의 벽화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얼짱스님
다시 만나 한 컷 더...
열반에 이르는 길
사원 안에서 보수작업을 하는 여인들
둘이서 무엇을 그리 열심히...
아예 포즈를 취해주네요
확실한 커플룩
▷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며…
오늘은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하지만 이곳 바라나시는 성탄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공휴일로 찍어놓긴 지만 분위기는 고작 호텔에서 투숙객들을 위해 조그만 츄리를 해놓는 정도?
저녁을 먹으려 매번 먹던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손님도 없고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했더니 잠시 후 지배인이 와서 오늘 밤은 특별 이벤트 손님만 받기때문에
일반 투숙객은 옆 식당을 이용하라네요 점심 때도 왔었는데, 거참ㅉㅉ
기분이 좀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싶어 옆 식당으로 갔더니 손님들이 거기다 모였네요.
한국에서 온 스님들도 있고..
좁아서 좀 북적대긴 했지만 스님들 덕분에 우리밥에다 찌게맛까지 봤네요
아예 밥솥까지 준비해 와서 우리 식으로 차려 드시더라구요
식사 후 궁금해서 성탄이브 특별공연을 한다는 레스토랑에 다시 가봤지요
헌데 이게 웬일? 무대 위에선 3인조 밴드에 맞춰 서양여성이 노래를 부르는데
손님은 달랑 4명, 백인가족 한팀이 무대 앞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네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나? ㅎㅎ
저녁먹고 거리좀 살피다가 썰렁해서 그냥 들어왔습니다
힌두교가 65%, 무슬림이 25%, 그리고 나머지 10%가 잡것들(?)이라니 그럴만도 하네요.
최대도시인 뭄바이는 어떨랑가 모르겠지만서도--
낼 크리스마스날은 울 딸아이 유나의 생일날이라 함께해야 하는데 첨으로 떨어져 있게 됐군요.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 복도 많다"고 하면 우리아인 그 반대라고 항상 불만이었지요.
남들은 두번 선물을 받는데 자기는 한번밖에 못받는다고 ㅋㅋ
이거 올리고 축전이라도 쳐야겠네요.
호텔에서나마 아쉬운데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살렸군요
이랬습니다. 달랑 한가족이...
밀려난 식당은 좁긴 했지만 벽화그림은 아주 좋았습니다
로비에 만들어 놓은 케익으로
여러분과 함께 메리크리스마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3신>__힌두나라의 크리스마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3신>__힌두나라의 크리스마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입니다
그래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제2신_바라나시에서 바라는것'에 이어 '강가강의 삶과 죽음'편을
띄우려고 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힌두나라에서의 크리스마스'를 먼저 올릴까합니다
바라나시에 유일하게 하나있는 교회에서 바자회를 한다기에 아침을 먹고 찾아갔습니다
숙소에서 얼마안되는 거리같아 걸어서 가는데 릭샤(인도의 대중교통수단)꾼들이 끈질기에 애워싸고
흥정을 걸어옵니다
아예 앞을 가로막고 귀찮게 구는 친구도 있어서 입을 꾹 다물고 앞만보고 걷느라 애를 좀 먹었지요
교회로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사리를 걸친 많은 주민들이 본당 앞에 모여 있고 안에서는 예배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몸에 걸친 사리의 모양세로 보아 지역 유지들은 다 모인것 같군요 길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고급스럽게 차려입었네요. 사리가 이처럼 다양한지 몰랐군요
그래서 이참에 아예 사리 온라인 패션쇼를 해볼까하고 열심히 헤집고 댜녔습니다
애들은 내가 신기한지 아예 따라 다니면서 사진 찍어 달라고 조르네요
그럼 함께 온라인으로 사리패션쇼를 감상해 볼까요?
덧붙여, 교회는 '있는 자'들만의 것이 아니죠
'없는 자'도 크리스마스때 만큼은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손님입니다
그래서 맨 끝에 그들의 패션도 두점 넣어봤습니다
이른바 걸인패션이라고나 할까요?
12. 25. 바라나시에서
바라나시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
교회안에 들어설 자리가 없어 밖에 모여있는 사람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문앞에서 배웅을 하고 있군요 우리처럼...
사리의 뒤태
인도의 귀부인들
이 부부는 아예 찾아와서 찍어달래네요
그래 좋은 기념을 남겨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
엄마는 즐거워도 아기는 그저 졸리울 뿐이고...
아기 땜에 찍었는데 엄마가 더 이쁜 ??
한가족
아이돌이 아니고 아이들패션 입니다
이들에게도 신의 축복을....
교회앞 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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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좀 오래 있으려고(두어달?)
가장 최근에 출시된 애플 맥북에어를 미국에 주문해서 사왔지요
그런데 맥 환경이 낮설어 기능을 익혀가며 작업하느라 무척 힘드네요
품평해줄 작품도 많이 쌓였을텐데 정말 미안합니다
당초 예정보다 빨리 델리에 돌아가서 챙겨보겠습니다
그리고 댓글로 성원해 주시는 분들 모두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항상 고맙게 보고는 있지만 감사답글 한번 못올립니다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고 항상 마음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 이런 이유로 제 글이 미흡해도 일단 올리고 나서, 틈틈이 계속 보완해 나가고 있음을
이해해 주시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4신>__델리에서 맞는 송년의 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4신>__델리에서 맞는 송년의 밤
지금 이곳 델리는 2010년 마지막 밤 11시 30분,
서울은 해가 바뀌어 2011년 첫날 새벽 3시가 되겠군요.
다사 다난했던 올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밤을
뜻하지 않게 먼 이국땅 델리에서 보내게 될줄은 정말 몰랐네요
이런 날은 사랑하는 이와 새 희망으로 부분 꿈을 꾸며
함께 해맞이를 나서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 쓸쓸함을 잊기 위하여
위험하다고 만류하는것을 무릅쓰고 밤 마실을 나섰습니다
델리시민들은 송년의 밤을 어떻게 보내나 보기도 할겸,
곁들여 소주라도 한잔 할겸...
카메라를 꼭꼭 감추고 다니라던 친구는
그래도 맘이 안 놓였던지 결국 따라나서고 말았습니다
좋은작품 하나라도 더 찍게 해줄려고 성가신 청을 마다않는 친구가 더없이 고맙죠
차는 요즘 다리가 아파서 운전을 잘 못하는 무케시가 콜택시를 예약해 보내주었습니다
여기서는 택시도 사전예약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친구가 일찍 퇴근해 집에서 쉬고있는 무케시한테 연락해서 미리 조치를 취해놨던 거죠.
게다가 그것도 불안해서인지 관사경비를 서고 있던 직원중 한명을 조수석에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택시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무케시가 직원한테 경호를 맡긴 거랍니다
가뜩이나 델리에 돌아와서도 외교부에서 자꾸 위험지역이라는 경고문자가 날아와 불안한 참에
이렇게까지 하니까 도대체 치안이 어느정도길래 이러나 싶었습니다
친구는 여기 사는 동안 여지껏 한번도 밤 나들이를 안했다고 하네요, 허허참.
그러고보니 옛날에 내가 아는사람 하나없이 혼자서 밤 기차를 타고
아그라로, 바라나시로 참 겁도없이 쏘다녔던 거군요 새삼 오싹해집니다.
택시는 다운타운으로 향했지만 아무리 달려도 캄캄한 어둠뿐이네요
창에 비치는 모습이라곤 어두컴컴한 거리와 허름한 옷을 걸친 남루한 사람들뿐.
아마도 일반시민들은 안전을 위해 집으로 다 들어가고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만 길거리에서 서성대나 봅니다
여기저기 무장경찰들이 길을 막고 통제하는 모습이 더 살벌한 느낌을 주네요
갑자기 차가 막히고 앞이 좀 소란합니다
이제 나름 번화가에 왔나보다 싶었는데
대로변 앞에서 아예 바리케이트를 치고 차량통행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인데 너무 위험해서 막는거라는 군요
우린 차에서 내릴 엄두도 못내고 결국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인구 10억이 넘는 대국의 수도인데 이정도일줄이야.
너무 도시관리가 안돼 있는것 같습니다
거기 비하면 서울은 참 대단한 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세상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서울처럼 밤 늦도록 마음놓고 쏘다닐 수 있는 도시는 정말 몇 안되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만의 걱정일뿐이고, 이곳 사람들에겐 문제될 게 없습니다
인도사람들한테는 모든게 다 ‘No problem’입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고,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그만인거죠
우리가 보기에 이런 답답하고 느슨한 문화를 이해할려면 그들의 뿌리깊은 윤회사상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런문제는 좀 더 철학적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라 여기서 장황하게 설명드릴건 못되지만
(귀국하면 때를 봐서 심도있게 한번 논할 기회를 갖지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들에게 이승에서의 성공과 치부는 별 가치를 안둔다는거지요
그건 윤회를 믿지않는(불교권이 아닌) 또는 영혼불멸을 믿지않는 기독교적인 문화에서 필요한 가치지요
윤회를 믿지 않으니까 현세가 중요하고, 내 몸이 존재할 때 잘먹고 잘살아야 행복한거라는 거죠
암튼 델리의 송년풍경을 보여드릴려고 했지만
한시간 동안 스산한 밤거리만 헤매다 숙소로 돌아와서 여러분에게 보여드릴게 없네요
그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거실에서 어제 사온 소주 한병으로 조촐한 망년을 보내고
갠지스강 일출사진 한장으로 새해인사를 띄웠습니다
대신 순서를 바꿔, 내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던 14세기 옛 고성을 먼저 보여드리죠
전날 사무국 직원들이 제가 사진찍기 좋을만한 아름다운 영국풍의 고성을 택해
송년회식을 예약했다는 말을 듣고 기대가 컸었는데, 막상 가보니 기대 이상으로 너무도 아름다워
도착하지마자 배고픈 것도 잊고 방방 뛰어다녔던 그런 곳입니다
정말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하루 묵어올까도 했는데 혼자 있기는 너무 아쉬워
나중에 사랑하는 이와 다시한번 오기로 마음 먹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지요
때맞춰 신혼커플 한쌍이 기념촬영 하고있는 아름다운 모습도 보이네요
정초에 행복한 마음으로 즐감하시기를~
경인년 마지막 날 밤에, 델리에서 배 병 수
- 14세기 영국풍의 고성 -
성채 정문안에 놓여있는 물 항아리
성채로 들어가는 통로
옛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배어있는 출입문
이 고색 찬연한 레스토랑에서 인도 전통음식을....
이곳은 좀 쌀쌀한 가을 날씨라 수영을 즐기는 사람은 없네요
올 레드컨셉으로 멋을 낸 정열의 여인?
지붕 위엔 늙은 호박을 잔뜩 쌓아 놓고 말리고 있군요
젊음을 과시하며 내 무거운 카메라가방을 끝까지 책임져준 고마운 친구도 한컷
이 멋진 곳에 초대해준 아태사무국 총장님과 직원들과도 기념 샷
마무리사진은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에서
아름다운 신혼커플의 행복한 컷으로 대신 합니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5신>__성스러운 ‘강가’의 삶과 죽음(1)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5신>__성스러운 ‘강가’의 삶과 죽음(1)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곳, 강가의 일출.
마치 현세와 내세가 윤회하듯, 영겁의 세월을 강가의 태양은 이렇게 뜨고 졌겠지요?
오늘은 제 2신에 이어 인도의 어머니라 불리우는 성스러운 ‘강가’이야기를
계속해 볼까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갠지스(Ganges)'강의 원래 이름이 '강가(Ganga)'입니다
갠지스강은 영국인들이 인도를 경영할때 부르던 영어식 이름이지요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갠지스강이라고 하면 잘 모릅니다
전설에 의하면, 강가는 원래 '천계'에 흐르던 강으로 '시바신'의 도움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 자체가 신격화된 여신으로서 숭배되지요
이렇게 워낙 신성한 강이라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죄가 씻겨나갈 뿐만아니라 간절한
소원까지도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고있는 거랍니다
따라서 힌두교인에겐 평생의 소원이 바라나시의 '강가'에서 목욕하는 것이라고 하며,
죽어서도 강가에서 화장을 해주면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기 때문에, 순례자 중에는
일부러 죽기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화장한 재를 강가로 흘려 보내면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랍니다
관광객들은 소의 배설물에서부터 타다만 시신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유물들이 떠다니는 곳에서
몸을 씻고 심지어 떠 마시기까지 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못하다가도
그들의 진지하고 경건한 모습에 오히려 경외심을 느끼게 되지요
암튼 내가 강가에서 보고자하는 목표는 3가지 입니다
첫째는 성스러운 강에서 몸을 씻는 의식, 둘째는 화장터, 셋째는 요가수행자들이지요
우리가 인도하면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들이 다 이곳 강가에 있는 셈입니다
강가강의 '가트'(강변과 맞닿은 목욕장)에서 사람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기위해서는
새벽 해뜨기 전에 가는 것이 좋지요.
가트에서 바라보는 강가의 일출은 참으로 장관인데, 그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몸을 씻고 소원을 빌려는 순례자들이 새벽같이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어둑어둑한 새벽에 강가로 나갔습니다 숙소에서 차로 50분거리--
이른시각 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강가를 향해 길을 재촉하고 있었지요.
강에 도착하면 보통 나룻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강변의 모습을 구경하게 됩니다
물론 나도 나룻배를 빌려타고 강으로 나갔지요. 헌데 오늘따라 목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네요.
겨울날씨 때문에 그러는 건지…이곳은 지금 겨울이라지만 한국의 좀 쌀쌀한 가을날씨 정도인데…
그래도 여기사람들 한테는 춥겠지요?
옛날에는 요가수행자들도 많이 보였는데 오늘은 그들도 통 찾아보기 어렵군요.
잠시뒤 해가 떠올랐지만 우리나라에서 보통 볼 수 있는 그런 모습 입니다.
배를 타고 위아래로 훑어봤지만 가슴뛸만한 대상은 보기 힘들어 대충 스케치만 하고
배에서 내렸습니다 세가지 중 아무것도 건진게 없네요
시간을 내서 다시한번 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강가'에서 가장 중심되는 지역
강과 맞 닿은 곳은 모두 이렇게 계단(가트)으로 연결되어 있지요
빨래하는 사람들
강가에 목욕하러 나온 일가족
여기는 목욕하는 사람들이 좀 있군요
'강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강가에 바칠 꽃을 파는 아이들입니다
이름이 'merigold'라는 꽃인데 이 칼라가 아마도 의상에서부터 생활전반에 가장 많이
쓰이는것 같습니다 뒤에 화려하게 꽃으로 장식한 배는 아마도 신혼커플을 태울 배인가 봅니다
관광객들은 일단 배를 타고 강을 오르 내리며 구경을 하지요
바다에만 있는 줄 알았던 갈매기도 '강가'에선 삶을 공유합니다
강한 인상 땜에 타기가 좀 꺼려졌던 나룻배의 사공
강물에 성수를 뿌리며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고 앉아있는 사람은 요가수행을 하고있는 중입니다
소일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강변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소들도 강변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네요
강변에 있는 소들의 소똥을 모아 말려서 땔감으로 팝니다
장작이 워낙 비싸서 서민들은 소똥도 귀한 자산이지요
힘 깨나 쓰게 생긴 얼짱소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무슨생각에 그리 빠져 계실까?
가트에서 차를 파는 요가수행자_내가 마실 차를 타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미안해서 주문했지만 다 마시고 나니 강물로 탄거라 해서 기겁을 했습니다
반갑게 포즈를 취해주던 도인다운 풍모의 요기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6신>__성스러운 ‘강가’의 삶과 죽음(2)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7신>__성스러운 ‘강가’의 삶과 죽음(2)
강가에서 화장하는 모습, 그리고 지켜보는 가족...
호텔에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예정했던 오후 일정을 포기하고 다시 강가강으로 나갔습니다
그 맘들 알지요?
출사나갔다 원하는걸 못 건지면 노심초사 좌불안석이 된다는걸__
이번에는 배를 안타고 강을 따라 걸으며 샅샅이 살피기로 했습니다
먼저 도착한곳이 화장터 입구, 콜택시와 다시 조우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복잡한 골목길을 헤치며 급히 화장터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엔 마침 여기 저기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난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꺼내들고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장례모습을 찍으려면 허가서가 있어야 하지만 그거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내가 카메라를 들고있는 것을 본 한 친구가 험악한 얼굴로 뭐라하더니
안되겠던지 나한테로 ?아와 카메라를 보자합니다
난 이제 막 도착해 아직 한 컷도 찍지않은 상태라 걱정말라며 카메라의 빈 메모리를 확인해 주었지요
그제서야 그 친구는 한번 더 경고하듯 절대로 찍지말라는 제스쳐를 취하곤 화장하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화장터 촬영을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다 이유가 있답니다
사진이 찍히면 혼을 빼앗긴다는 속설을 아직도 믿고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요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서양 선교사들이 사진을 찍으면 혼을 뺏긴다고 달아나곤 했다잖아요
그거랑 같은 맥락이죠
그런데 그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언젠가 유럽 어느TV에서 이 화장하는 풍습을 마치 엽기적인
'몬도가네'식으로 찍어 소개한 모양입니다 그일에 대한 반감이 커서 그후부터 찍지 못하게 하는
거랍니다
난 잠시 그대로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결국 촬영을 포기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우선 다른 촬영부터 하면서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지요
먼저 다음 촬영대상으로 아침에 봐뒀던 요가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배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학교라고 하기엔 허술하기 그지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요가센타라는 간판은 붙어있었지요 살펴보니 위층에 조그만 차마시는 곳이 있어
잠시 갈증도 풀겸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곳엔 바로 강가강 앞이라 전망이 좋아서 그런지 손님이 모두 외국인들이었지요
우선 인도전차를 주문하고 주인에게 요가선생이 이곳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있긴하지만 오후 4시가 넘어야 나올거라고 하네요
난 기다리기도 그렇지만 만나봐야 분위기상 별로 신통치가 않을것 같아서 요기 촬영은 뒤로 미루고
강 상류쪽으로 올라가며 헌팅하다 다시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화장터 앞에 있는 카페건물이 하나 있는것 같아서 그 위에 올라가 전망을 한번 살펴볼 참이었습니다
혹시 또 알아요? 운 좋으면 몰래 한 두컷 정도라도 찍을 수 있을지 …
다시 본 화장터는 불길이 더 늘었고 카페건물은 4층 정도로 거기서 10여미터 떨어진 뒤에 있었지만
창문을 통해 어쩌면 조금은 보일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상황판단이 서자 곧바로 카페로 향했습니다
발길을 재촉하면서도 머리속은 온통 기대반,걱정반으로 복잡했지요
“카페안에 있는 사람들 눈은 어떻게 피할까” “주인이 보면 또 뭐라할까” 뭐, 이런거--
순간, 꽃으로 장식한 시신 한 구가 여러사람한테 들려 내옆을 스쳐가는것이 아닙니까!
난 반사적으로 조끼속에 감춘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습니다 당연히 목측으로!!
카페에 들어서자 다행이 손님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난 곧바로 맨 위층으로 올라가 종업원 몰래 창틈으로 망원렌즈를 설치하곤 겉옷으로 덮어 씌웠지요
이제사 조금은 마음이 진정돼 조심스레 밖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전기줄이 시선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의 표정까지를 읽을순 없었지만
전체적인 상황파악은 가능했습니다
새삼 말로만 듣던 강가강의 화장풍습을 이렇게라도 직접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그런데 불길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어서 좀 뜻밖이었는데 이유인즉 오늘이 길일이어서 유독
장례가 많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화장이 끝나면 가족들이 그 재를 성스러운 강가강에 뿌리는 것으로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고하지요
인도사람들은 죽으면 강가강에서 화장해주는걸 가장 큰 복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강가강까지 시신운구 비용만도 엄청나고
장작값도 비싸기 때문에 웬만큼 여유있는 집안 아니면 꿈도 못꿀 일이니까요.
그래서 돈 없는 사람은 화장도 못시키고 밤에 몰래 강에 시신을 던져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득 눈앞에서 충격적인 주검을 대하고 있는 나 자신이 왜 이리도 담담할까하고
스스로 놀랍니다
지금도 새드무비를 보면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여린마음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불길에 휩싸인 가족의 시신앞에서 슬피 울거나 애통해함이 없이
그저 숙연하지만 담담하게 지켜만 보고있는 저들의 모습 때문일 것 같습니다
곡을 하거나 땅을 치며 통곡하는 우리네 모습과는 사뭇 다른….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어찌 크지않을까만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들의 여유는
이승에서 그저 잠시 떠나있을 뿐이라는 윤회사상의 힘이 클것입니다
카페에서 내려오니 골목입구에 유독 승용차들이 많아 더욱 더 복잡했는데
대기하고 있던 콜택시기사 얘기로는 지금 아주 높은사람의 시신을 화장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옆을 스치가던 그 유독 꽃장식이 화려했던 운구가…
참으로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인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은 다시 환생하면 어떤모습일지… 이승에서 덕을 쌓은데로 태어난다니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만나리…
잠시 상념에 젖어 소리도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현재와 미래가 시작과 끝도 없이 영원히 돌고 도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들의 윤회사상이 어쩌면 시간의 흐름을 잊은 체,
영겁의 세월을 변함없이 흐르고 또 흐르는 강가의 삶에서 연유되지 않았을까요?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곳,
강가에서 배 병 수
* 주 :목측촬영__ 화인더를 들여다 보지않고 감각적으로 촬영하는것으로 한국 사진계의
거목이셨던 고 임응식선생님이 명동을 기록할때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게 주로 사용.
때론 틀에 박힌 구도를 깨고 싶은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강가에서 제일 큰 화장터, 장작이 엄청 쌓여있군요
내 옆을 스쳐가던 시신 운구
오늘이 길일이라서 그런지 유독 많은 시신이 몰렸답니다
한꺼번에 여러구의 시신을 화장하고 있군요
화장터에서 쓰인 추모용 꽃을 먹고 사는 염소_ 지상최고의 화려한 식단이네요
강가를 바라보며 잠들었던 한 식객, 이렇게 화석이 되었다네요(스토리텔링을 만든다면 ㅎㅎ)
강을 따라 걷다보면 여기 저기 이런 조그마한 추모 신전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결혼 축제모습도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7신>__‘강가’의 골목 안 풍경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7신>__‘강가’의 골목 안 풍경
중국에 '소녀경'이 있다면 인도엔 '카마수트라'가 있지요
이 글을 올리고 곧바로 델리 역으로 가서 밤 열차를 타고 그 '카마수트라'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카주라호'에 갑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애로틱한 조각의 사원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11시간 걸리지만 짐 봐줄 사람도 없이 홀로 여행이기 때문에 눈도 못 붙이겠네요
배낭 꼭 끌어안고 날밤 새워 야지요
올 때 마다 꼭 가보려 했지만 쉬운 길이 아니라 가지 못했었지요
위험한 여정이라 그리 녹녹치는 않겠지만 그게 여행 길 이니까요
카주라호에서 이틀 후 이번엔 항공편으로 다시 바라나시에 갑니다
14일이 인도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 일년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날이라 해서
못 참고 다시 가는 거지요
지금 올리는 사진은 바라나시 '강가'의 골목길 풍경만 따로 모아본 겁니다
바라나시의 모든 골목길은 강가로 통하지요
델리에서, 배 병 수
(시간이 없어 빨리 나가봐야 겠네요. 사진 먼저 올리고 다녀와서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인도에서 장작과 소똥은 아주 중요한 땔감으로 재산적 가치가 높지요
골목안에서 화롯불을 쬐며 담소를 즐기고 있군요
앞서 소개했던 앞서 소개했던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학생
자세히 보면 반가운 무엇이 있습니다
앞에 앉아 계신 도사가 아래 분입니다
자신이 왕이라고 쓰여 있답니다. 골목대장이신가?
골목을 지나다 보면 개인집에 이런 작은 신전들이 많이 눈에 띱니다
여기 아이들 책가방도 만만치 않네요
테러 때문에 이곳 분위기도 살벌합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나마 길이 좀 한가 합니다
바라나시의 거리. 길은 모두 강가로 통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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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역에 나갔다가 결국 또 허탕 치고 돌아 왔습니다
첨에 한 시간 연착이라더니 다시 또 6시간 연착이라네요
옛날에도 이러다가 역전에서 밤샌 적이 있지요
저녁 8시 열차가 다음날 아침 8시에야 왔으니까요
티켓 예약해준 여행사에선 카주라호 항공편은 자주 결항 되지만
기차는 요즘 좋아져서 연착 되어도 1시간 정도니까 확실히 하려면 열차가 났다고 해서
여차를 택한건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요
역시나 제가 옛날에 느꼈던 '시간이 정지되어있는 곳'이 지금도 맞습니다
다른 나라 여행하듯 스케줄 잡으면 이렇게 낭패 보기 십상이지요
아마도 인적없는 오지 빼놓고는 사람 사는 곳에서 제일 여행하기 어려운곳이
인도가 아닐까 싶네요 더구나 기차여행은 거의 오지탐험 수준입니다
자기가 탈 기차와 자리 확인하고 짐을 내려놓기 전까지가--
역에 들어서면 지나다닐 틈도 없이 온통 사람들로 가득 합니다
모포 뒤집어쓰고 아예 역 플랫홈 찬 바닥에 드러누워 언제 올지 모를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난민촌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난감 하네요 거기서 다음날 바로 비행기로
바라나시에 가야하는데 말이죠
잠시 눈 좀 붙이고 다시 나가봐야 겠습니다
(참고로 재 노트북도 서울시간으로 찍히네요 현지시간으로 셋팅해 놓지 않아서--
3시간 반을 빼면 이곳시간 입니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8신>__카주라호에서 '카마수트라'를 보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8신>__카주라호에서 '카마수트라'를 보다
옆 사람의 수줍어하는 표정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갠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각이지요 조각가의 재치와 감성을 느낄수 있어서...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왔습니다
서울은 아직도 춥다지요?
유난히 옆구리가 시린사람도 있겠네요
이곳도 잠자리는 싸늘합니다 기본적으로 에어컨시설은 잘 되어 있지만 난방하고는 거리가 멀어
몇년만에 추위가 찾아오니(그래봐야 영상이지만) 대책이 없네요
한국여행자들은 침낭까지 들고온다더군요
카주라호와 바라나시를 돌아 주말에 다시 델리로 돌아왔지만 무거운 배낭을 너무 오래
매고다녀서 인지 예전처럼 다시 어깨가 욱신거려 좀 쉬었지요
노트북을 가지고 가긴 했지만 현지에선 꺼내볼 시간도 없었구요
델리역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볼까요?
6시간의 연착시간을 보내고 새벽2시반에 다시 델리역에 나갔지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혹시나하고 둘러봐도 외국인이라곤 역시 나혼자 뿐이군요
호기심 있을만도 하지요
잠시후, 어떻게들 알았는지 태평하게 바닥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일어나고
보따리들을 챙겨 철로앞쪽으로 이동하는걸 보니 기차가 오긴 오는 모양입니다
다행이네요 더 연착이 안돼서..
올라타는것 또한 장난이 아니군요
기차가 서기도 전에 매달리고 난립니다 어디서 많이보던 장면이…
좁은 칸칸이 침대가 양쪽에 3단, 창문쪽에 2단해서 8개가 있고 내자린 맨 아랩니다
다행이 같은 칸에 3대에 걸친 한가족이 자릴잡아 좀 안심이 됩니다
화장실갈 때 짐을 봐달랠 수가 있어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 도착하자 다시 승객들이 많이 올라탑니다
그중엔 배낭여행인듯한 젊은 한국인커플도 있군요
밤 11시 기찬데 연착이돼서 역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이렇게 아침에 탔다고 하소연입니다
그 얘길 들으니 웃음이 나네요 옛날에 나도 밤 8시 기차를 플랫홈에서 꼬박새고
다음날 아침에야 탔던 생각이 나서…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한번 선 기차가 다시 떠날줄을 모릅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봐도
역시 그 자리입니다 도착예정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네요
앞침대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아직도 대여섯 시간은 더 가야 한답니다
기가차네요 정오에 도착예정인 기차가 오후 1시가 지났는데도 그렇게나 더 가야한다니..
그럼 오후 촬영은 물건너가고 다음날은 비행기로 바라나시에 가게 되있으니…
결국 바라나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 고생을 하며 먼길을 돌아온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기차는 카주라호에 도착했고 난 곧바로 숙소를 잡기위해
역앞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오토릭샤를 사원이 밀집 되어있는 웨스턴 지역까지 100루피
(우리돈 2700원정도)에 흥정해 잡아탔습니다
젊은 커플도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며 흥정할 줄 모르니 같이 잡아달라고 부탁해서
함께 타고 숙소를 구하러 갔지요
다행이 최고급 호텔(실제는 호텔 아님)이라고 안내서에 소개된 곳에서 깨끗하고 넓직한 싱글과
더블룸을각각 2백과 3백루피에 흥정을 해서 짐을 풀었습니다
바가지는 고사하고 무지무지하게 싸게 잡은 거지요 덕분에 고맙다고 그 친구들이 저녁을 사네요
하지만 이집도 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낮에는 추운지 모르지만 밤에 냉기가 흐르는 눅눅한 침대에선 옷을 다 껴입고 자도
추워서 잠을 설칩니다
그 상태로 새벽같이 일어나 에로틱 조각이 가장 많은 서부사원으로 달려갔지요
개장시간은 7시, 입장료는 250루피, 물론 비행기 타기 전에 조금이라도 찍어보기 위해섭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일착으로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원벽의 조각에 빛이 안드네요. 살펴보니 오후에나 되어야 한면만 빛이 드는 그런 구조입니다
난감하지요. 비행기시간이 12시 40분이라 늦어도 11시 반까지는 비행장에 도착해야하는데
기다릴 시간도 없고..
급한 김에 어두운 밤길에 쓰려고 델리에서 사온 2천원짜리 손전등을 비춰보기도 하고
감도를 800, 1600으로 높이기도 해가면서 급하게 셔터를 눌러댔지요
빈손으로 가는것 보다야 나으니까요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 돼서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밤에 안보이던 주인이 나와있어 나중을 생각해 명함을 교환하며
혹시나 싶어 가격을 물으니 맥시멈 2천루피라네요 허허,,
어제밤에 데스크 종업원이 주인없다고 삥을 쳤나?
이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말로 표현하지못할 정도로 에로틱한 사원의 조각상들에 대한 사연은
아직도 정설이 없읍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제가 언급했던 까마수뜨라의 원전일거라는 설도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여행안내서에 기록된 말이지만 좀 더 깊이 살펴보니 오히려 그 반대로군요
까마수뜨라는 1세기에 쓰여졌지만 이 사원들은 10세기경에 지어졌으니 오히려 까마수뜨라가
원전이 되는게 맞지요
이부분은 워낙 다양한 설이 있어 좀 더 연구를 해본 뒤 기회를 봐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사진은 워낙 노골적인 성인물이라 차마 올리기 뭐해서 수위가 좀 낮은걸로 선만 보입니다
다른것은 괜찮을지 좀 더 검토를 해봐야 될것같습니다 독립테마의 전시계획도 감안해서--
서부지역 사원군 중 대표적인 락쉬마나사원
사원의 안팎 전체가 이렇게 수많은 조각들로 덮여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에로틱조각이 아니고 마치 숨은 그림 찾기하듯 아주 작게
기단밑(아래사진)이나 주로 빛이 안들고 눈에 잘 띠지 않는곳에 대부분 숨겨있지요.
그 이유는 환한 대낮에는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후미진 곳에 찾기 어렵게 숨겨져있던 아주작은 조각(손전등으로 비춰 촬영)
관광객은 잘 찾아낼 수 없기 때문에 직업으로 돈받고 찾아주는 현지인들도 꽤 있지요
아마도 시바신일듯, 피부의 감촉이 느껴질듯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매끄럽게 흐르는 곡선이 아주 예술입니다
이렇게 크고 정교한 조각들은 대개 신을 나타낸 거라고 합니다
신전앞 계단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맨발의 여인
신전 안에서 기원을 드리고 나오는 귀부인
조각의 일부가 된 원숭이 가족
가끔씩은 이렇게 다람쥐의 재롱도 보고...
이번엔 이쯤 해두고 낼 아침 다시 카주라호에 갑니다
이번엔 기차가 아닌 비행기로--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커지고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 한번으로 접기엔 아쉽네요
좀 더 깊이 음미해봐야 겠습니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9신>__최대의 축제가 열린다는 '강가'로 다시 향하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9신>__최대의 축제가 열린다는 '강가'로 다시 향하다
오늘은 인도의 경축일로 연중 최대의 인파가 강가강에 찾아온다고 합니다
카주라호에서 비행기로 바라나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곧바로 강가강 중심부 가트에 예약해둔 숙소로 갔습니다
네번째나 강가강을 찾게 되네요
낼은 일년중 사람이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가장 많이 찾아온다는 축일이라
새벽에 이동하는 불편을 덜기위해 지난번처럼 강가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이 아니라
바로 강가 중심에 있는 숙소를 미리 예약해둔 거지요
방은 협소했지만 발코니에 나가 강가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은 끝내주네요
저녁에 행사전야제가 있다해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나갔습니다
인도에 온 이래 처음보는 이 행사는 우리처럼 춤추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신에게 축원을 하는 종교의식인듯 한데 식이 끝나고 의식에 쓰인 꽃을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보기좋군요
사람들은 조그마한 꽃등을 강가강에 띄워보내며 소원을 빕니다
행사가 끝나고 늦은 밤 나도 강가강에 처음으로 꽃등을 띄워보냈지요
무언가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웬지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밤새 밖이 소란스러워 배란다에 나가봤더니 밤안개가 짙게 드리워 밑이 전혀 보이질 않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만 요란합니다
어차피 잠은 못자겠다 싶어 카메라 하나 매고 강으로 내려갔습니다
짙은 안개속에 어떤 극적인 장면이라도 나올까 해서죠
하지만 한치 앞도 안보여 다시 들어와 버렸습니다
기분이 들떠 있는 군중들에 휩쓸리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입니다
날이 좀 밝아져 안개속으로 사람들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다시 강으로 나갔습니다
과연 강에는 어두컴컴한 이른새벽부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인파가 강물에 모여들어
몸을 씻거나 기도를 하고 꽃등을 띄우기도 했지요
말로만 들었지 올때마다 볼 수 없었던 그런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에 적은 형형색색의 사리들이 정말 장관을 이루고 있네요
그런데 우리가 볼때 각종 오물이 떠다니는 그 끔직한 강물에 머리끝까지 담그고
양치질도 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강물때문에 병에 걸린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오죽하면 과학자들이 그 물을 떠다가 연구까지 했는데 신기하게도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답니다
참으로 알면 알수록 알수 없는 나라가 인도가 아닌가 싶네요
전야제 시작전 세사람의 고인 사진을 놓고 위령제를 지내고 있네요
위령제가 끝나면 유족이 강물에 꽃을 뿌리고 넋을 위로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야제가 시작됐습니다
행사를 리드하는 음악을 맡고있는 팀
드디어 축제날입니다 짙은 안개로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이른새벽부터
강가강에서 몸을 씻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놀랍게도 탈의실이 없어 여자들도 요령껏 알아서 갈아입습니다
꽃파는 아저씨도 대목보려 분주합니다
옆의 사람은 우리의 점쟁이 역할이지만 축원도 해주고 문신도 해줍니다
노익장의 할머니도...
준비해온 소품으로 기원의식을 하고있습니다
이사람 날 발견하곤 반가운듯 쫓아오더니 흰밀가루 묻힌 손으로
머리에 마구 뿌리고 주문을 외우고..그다음부터 모자를 쓰고 다녔지요
물에서 나오니 추운가 봅니다
새벽안개가 걷히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사리들로 강변이 채색됩니다
물가에 만들어져 있는 알수없는 동물신에게 축원을 합니다
어린 아기엄마가 기원을 하고있다
기원의식을 하기위해 준비해온 소품들
노천에서 옷갈아 입는걸 가족이 도와줍니다
딸과 함께 꽃등을 띄워보내는 이남자는 꽤나 지체높은 분인듯
무장경찰의 호위를 받고 있네요
독특한 자세의 이남자는 도사 or 걸인?
열심히 설법(?)을 듣고있는 사람들
다신교인 인도에서 이렇게 각자의 신을 섬기는건 자유입니다
목욕 후 치장에 여념이 없는 누나옆에서 남동생은 따분하기만 합니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0신>__촬영시 안전수칙 제 1조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0신>__촬영시 안전수칙 제 1조
《 촬영시 안전수칙 제 1조 》
앞만 보지말고 반드시 뒤를 살필 것
9999번 마지막 컷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미처 올리지못한 부분만 정리해서 올리고
비행기표 구하는데로 일정 앞당겨 귀국하겠습니다
코끼리에 붙잡힌 어린이를 구하려고 사람들이 달려들고 있다
그 옛날엔 코끼리가 많아서 이런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1신>__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바로 '인간'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1신>__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바로 '인간'
(그동안 올리지 못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계획된 스케줄대로 여행을 하다보면빤히 보면서도 차를 세우지 못하고
아쉽게 지나쳐야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오늘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한번 시골 길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시간에 쫒기지 않고 스치는 모습들을 구경하며 가다가 눈에 들어오면 찍을 심산 이지요
제가 이번 여행 길에 보고자 하는건 바로 사람 사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양한 사진을 무수히 찍어대지만 후일에 가치있게 남는 건 결국
어느 곳에서든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들의 채취와 호흡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결국 우리의 모습, 바로 '인간'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때문에 제가 어딜가나 제일 관심을 갖는건 바로 '사람 사는 모습'인 것입니다
자존심이 유독 강하게 보이던 소녀
그들의 농가
옛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흙벽돌공장
벽돌공장 안의 가족들이 사는 집
벽돌 굽는 곳으로 말들이 일렬로 벽돌을 나르고 있다
말 달구지. 말에게도 주렁주렁 꽃치장을...
사람이든 말이든 차든 참 치장을 좋아한다
걸리고 안고 이고... 옛날에 우리도...
도자기 파는 가게들
소똥을 말려서 파는 가게. 뒤에것보다 앞에 모양낸게 더 비쌀것 같다
도공이 집에서 일회용 찻잔을 만들고 있다
만든 도자기를 손질하는 그의 아내
가족 기념사진을 찍어준다고 하자 좋아서 세수도 씻기고 멋을 부리고 나왔다
여자들은 맨얼굴로 밖에 나올수 없데서 좁은집안에서 찍었다
남자들은 밖에서 찍고...
싸납쟁이 할머니의 손주들. 손녀가 쓰고 있는건 비닐봉지다
수예를 하고있는 할머니
양지바른 곳에서의 담소
까마귀의 쉼터
성 앞에는 반드시 성을 통해 먹고사는 마을이 형성된다
유독 재봉틀집이 많은 이유는 영국군 주둔당시
군복수선으로 먹고사는 집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네이발소
성안에 있는 엄청 큰 이 우물로 미뤄봐서 영국 주둔군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성으로 소풍 나온 학생들
삼총사. 커서도 우정이 변치말기를..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2신>__올드델리와 뉴델리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2신>__올드델리와 뉴델리
한달이나 넘게 인도를 보여주면서 정작 델리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델리는 인구 1,280만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인 인도공화국 수도입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에게 있어 까마득한 신화시대부터 존재했던 델리는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렇게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의 향기와 현대적인 감각의 조화, 혼란과 무질서 속의 느긋함, 도시한복판에 빈민촌이 버젓이
존재하는가 하면 세련된 유럽풍의 쇼핑거리가 있는등 인구 수 만큼이나 다양성이 많은 도시지요
이러한 델리를 크게 나누어 올드델리와 뉴델리로 부릅니다
올드델리는 말 그대로 200여년간 인도대륙을 호령했던 무골제국의 옛 수도지요
그런만큼 많은 볼거리들이 이곳에 몰려있는 반면 혼란과 무질서 또한 극심해 처음가는 사람은
정신을 못차릴 정돕니다
그러나 뉴델리는 1911년 영국에 의해 조성된 계획도시로 대통령궁(지난 8월 왔을때 보여드림)과
인디아게이트등이 있으며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코넛플레이스지역은 유럽풍의 아름다움과 인도풍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지요
보통 델리를 소개할때 올드델리의 그 무질서한 모습만을 많이 보여주지만 여기서는 잘 소개되지않은
현대적인 모습도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극과 극의 두 모습이 다 오늘의 인도니까요
그리고 또 압니까? 너무 부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면 담에 못들어오게 할지도--
그 부분에 있어 상당히 예민해져 있으니까요
▶ 올드델리
사람과 인력거와 차들이 한데 뒤엉켜 떠밀려간다
가장 큰 재래시장인 '찬드니 촉'건너편의 극장 간판
델리에서 가장 대표적인 '자마마스지드' 사원과 입구의 노점상들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의 최후 걸작품으로 유명하다
꽤나 지체높은 신분의 가족들이 사원을 방문하는 듯 하다
그러나 사원주변은 이렇게 슬럼가다
그 복잡한 도로 한복판에서도 여유로운 사람들의 표정을 차안에서 한 컷
야무나강변의 큰 사원인데 통제가 심해 안에 들어갔다 그냥 나옴
사원 앞에서 한가롭게 전통악기를 불던 사람
▶ 뉴델리
뉴델리에서 가장 번화가인 코넷플레이스 주변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
코넛플레이스에서 시민들이 군악대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영국식복장의 군악대
가끔씩 들렀던 숙소건너편의 하얏트호텔
호텔 안에 있는 회교도가 운영하는 카펫 가게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3신, 마지막편>__정들었던 인도를 떠나며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제 13신, 마지막편>__정들었던 인도를 떠나며
제가 인도에 온지도 벌써 한달이 넘었군요
아직도 귀국 예정일은 몇일이나 남았는데 아쉽게도 여기서 작별을 고해야겠습니다
다행이 항공편이 마련돼 오늘 돌아가니까요
친구가 빨리 입원 치료해야 된다는 병원진단서를 첨부해서 항공사에 요청해
에어인디아에서 특별히 배려, 별도 페널티없이 일정을 앞당겨 주고 핼프써비스도 제공해준 덕입니다
현지 TV와 신문에도 사고뉴스가 나갔으니 그들도 상황을 알고 있었겠지요
사실은 11회와 12회분은 통증이 너무 심해 움직일 수가 없어서 엎드려 작업해 올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달여 동안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한가지만을 위해 뛰었던것 같습니다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얻었지만 그래도 뭔가 마무리를 하지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당장 어제, 취재협조 요청까지 해놓고 1박2일로 가기로 했던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요가선생 ,
24일 초대받은 인도 전통혼례식 참관, 그리고 귀국전날인 26일 인디아게이트에서 벌어지는 국경일 경축행사 촬영 등
어쩌면 지금까지 찍어온 볼거리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작업들을 못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만도 다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성원과 안녕을 빌어준 덕이지요
만에 하나 머리부터 떨어졌더라면 어찌됐겠습니까. 정말이지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지요
한,중 수교전 한국인 최초로 북경에서 사진 초대전을 하는 길에 백두산을 찾았다가 낭떠러지에서 추락사고를 면하고
(국내 일간지에는 내가 사고사를 당했다고 기사가 나갔다지만)
이번에도 이렇게 무사한걸 보면 절 지켜주는 행운의 여신이 있긴 있나 봅니다
카주라호가 조그마한 마을이라서 병원이 없다보니 숙소에 혼자 누워 인도 전통치료사에게
치료받는 처지가 되어 한편으론 서럽기도 하였지만, 또 한편으론 그나마 이만한게 다 우리회원들이
매회마다 걱정하고 기원해준 덕이란 생각에 고마워 눈물도 나곤 했지요
해서, 인도에서 띄우는 이 마지막 서신을 통해 회원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또 사고 당시부터 카주라호를 떠날 때까지 날 부축해 주고 먹을거 날라다 주고 손발이 되어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윤진이와 그의 인도친구(한국이름 민수), 그리고 민수형과 민수친구 뿌라까시,
또 맨처음 사고현장을 목격하고 도와준 손은주씨(사고 다음날 나를 현지인들에게 인계해주고 바로 네팔로 감),
그리고 내방 윗층에 묵었다가 소식듣고 내려와서 응급처치를 도와준 혼자 배낭여행중이라는
이영신씨등 모두모두 고맙지요
그리고 끝으로 백번 천번 고마움을 표해도 부족할 사람으로 델리에서 한달 이상을 바쁜 회사업무에도 불구하고
관사에서 한가족처럼 모든 것을 배풀어주고 특히 내가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노심초사하며
모든 상황을 체크 관리해준 최박사 부부에게도 부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 면을 통해서나마 감사드리며
평생 잊지 않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남기고 떠납니다
몸은 비록 아프지만, 내가 가장 어려울 때 길이 길이 추억에 남을 많은 친구들을 얻었음에 마음이 더욱 더 기쁩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국경을 초월해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음이 좋은 거지요
전시가 뜻한데로 이루어져 다 함께 모여 화제의 꽃을 피우며 축배를 들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현지신문 사고기사. 졸지에 휠체어 신세를...